조용한 걸음, 끝까지 이어진 믿음의 길

  • 윤명순 권사님
    1952년 09월 10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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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걸음, 끝까지 이어진 믿음의 길 ─ 행암교회 윤명순 권사 이야기

충남 천안의 시골 마을, 행암교회에서 오랜 세월 권사로 살아온 윤명순 권사님의 삶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화려한 간증도, 특별한 전환점도 없지만 그녀의 하루하루는 오히려 그 담백함 속에서 진짜 신앙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가족을 향한 기도, 예배에 대한 열심, 교회를 위한 헌신은 그녀에게 신앙이 삶이고 삶이 곧 예배임을 증명합니다. 인생화원 팀은 윤 권사님의 신앙 여정을 직접 듣고 기록하며, 오늘날 우리가 잊기 쉬운 순전한 믿음의 모습을 다시 붙들고자 했습니다. 이 기사는 한 권사님의 삶을 통해, 우리가 놓치기 쉬운 소중한 신앙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조용히 쌓은 신앙의 기초

윤명순 권사님의 삶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가정’입니다. 권사님은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 평범함 속에 신앙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직장 생활, 자녀들의 성장 과정, 가사와 교회 봉사를 동시에 감당하며, 그녀는 하루하루를 기도로 버텼습니다. 특히 자녀가 병상에 있을 때, 밤을 새우며 드린 눈물의 기도는 지금도 그녀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데려가시더라도 제게 믿음을 지켜주시고, 이 아이가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고백은 단지 자식을 향한 사랑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의 표현이었습니다. 가정에서의 믿음은 교회에서의 신앙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식사 전 기도는 물론, 아이들에게 주일성수의 의미를 설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사춘기로 방황할 때도, 남편이 힘겨워할 때도 권사님은 큰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때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가정을 세우는 데 있어 말보다 기도가 앞섰고, 훈계보다 중보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손자와 손녀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며, “우리 집안은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집안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윤 권사님의 가정은 단지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기도로 엮이고 세워진 하나님의 울타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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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세운 가정의 울타리

윤명순 권사님의 삶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가정’입니다. 권사님은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 평범함 속에 신앙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직장 생활, 자녀들의 성장 과정, 가사와 교회 봉사를 동시에 감당하며, 그녀는 하루하루를 기도로 버텼습니다. 특히 자녀가 병상에 있을 때, 밤을 새우며 드린 눈물의 기도는 지금도 그녀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데려가시더라도 제게 믿음을 지켜주시고, 이 아이가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고백은 단지 자식을 향한 사랑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의 표현이었습니다. 가정에서의 믿음은 교회에서의 신앙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식사 전 기도는 물론, 아이들에게 주일성수의 의미를 설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사춘기로 방황할 때도, 남편이 힘겨워할 때도 권사님은 큰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때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가정을 세우는 데 있어 말보다 기도가 앞섰고, 훈계보다 중보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손자와 손녀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며, “우리 집안은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집안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윤 권사님의 가정은 단지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기도로 엮이고 세워진 하나님의 울타리였습니다.


새벽 예배로 세운 하루의 리듬

윤명순 권사님의 하루는 늘 새벽을 깨우는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조용한 교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는 그 시간은, 권사님에게 하루를 살아갈 힘이자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는 고백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선 고백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비가 오고, 눈이 쌓이고, 몸이 아픈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포기한 날은 없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없던 교회 마룻바닥 위에서 기도하는 시간이야말로 권사님의 영혼을 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는 삶의 응급처치가 아니라 일상 그 자체였고,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었습니다. 그런 삶이 이어져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을 말씀으로 여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윤 권사님에게 새벽 예배는 곧 ‘신앙의 리듬’이었고, 그 리듬 속에서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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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날

윤명순 권사님에게 주일은 단순히 예배드리는 날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거룩한 날’입니다. 주일만큼은 세상 일을 내려놓고, 아침부터 교회로 향해 예배 준비를 돕고, 찬양과 기도로 하루를 채우는 것이 권사님의 오래된 신앙 습관입니다. 주일 오전예배뿐만 아니라 오후예배, 심지어 교회 청소나 주방 봉사까지도 모두 주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연장선으로 여겼습니다. “주일에는 절대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어요”라는 단호한 말 속에는, 오랜 시간 동안 훈련되고 지켜온 신앙의 기준이 느껴집니다. 가족 중 누군가 주일을 소홀히 하려 할 때면, 권사님은 말로 강요하지 않고 기도와 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자녀들과 손주들까지도 주일예배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윤 권사님의 삶을 보면, 주일성수가 단지 주일 하루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일의 삶 전체를 결정짓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의 삶의 흐름을 계획했고, 그 기준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윤명순 권사님에게 주일은 단지 ‘휴일’이 아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날’이자, 신앙의 중심을 세우는 소중한 날이었습니다.


교회는 내 삶의 중심

윤명순 권사님에게 교회는 단지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아닙니다. 삶의 중심이자 신앙의 고향, 때로는 기도처이자 쉼터였습니다. 이사할 집을 정할 때도 ‘교회와 얼마나 가까운가’를 가장 먼저 고려했고, 일상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교회의 말씀과 공동체의 흐름을 기준 삼았습니다. 특히 교회 봉사는 삶과 분리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설거지, 청소, 안내, 심지어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일까지도 감사로 감당했고, 누구보다 먼저 나와 준비하고 가장 늦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런 권사님의 모습을 기억하는 성도들은 그녀를 “늘 그 자리에 계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면 누구보다 먼저 기도했고, 공동체 안에 상처가 생기면 가장 조용히 다가가 위로하고 품었습니다. 권사님은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지만, 교회는 그녀를 통해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권사님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자리”라고 고백합니다.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삶의 현장. 그것이 윤명순 권사님에게 교회가 가진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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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속 복음을 담다

윤명순 권사님의 삶은 특별한 사건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신앙이 녹아든 시간이었습니다. 장을 보며 만난 이웃과도, 버스를 기다리며 나눈 말 한마디에도 그녀는 예수님의 향기를 담으려 애썼습니다. 화려한 언변은 없어도, 늘 웃는 얼굴과 진심 어린 인사는 그 자체로 복음의 향기였습니다. 교회 밖에서의 삶도 교회 안과 다르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권사님을 통해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누군가를 전도할 때도 억지로 끌어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따뜻한 밥 한 끼, 작은 위로의 말, 함께 예배 가자는 자연스러운 제안으로 이웃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내가 말로 잘 못해도, 내가 사는 모습이 복음이었으면 좋겠다”는 고백은, 복음을 단지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고자 하는 그녀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신앙은 거창한 사역이 아닌 일상 속 실천에서 빛났고, 그 진실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이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습니다. 윤 권사님은 그렇게 오늘도 평범한 하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내며 살고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끊임없는 중보

윤명순 권사님의 신앙 가운데 가장 깊은 자리는 자녀를 향한 기도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을 믿음 안에서 바르게 키우기 위해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해 왔습니다. 단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신앙 안에서 바로 서고, 교회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중보였습니다. 자녀가 힘든 시기를 겪을 때도, 삶의 방향을 고민할 때도, 권사님은 판단이나 간섭보다 ‘기도’로 그들의 길을 열어주려 애썼습니다. 어느 날 자녀가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고민할 때, 권사님은 아무 말 없이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기도만 드렸다고 합니다. 자녀는 나중에서야 “그때 엄마의 기도가 나를 지켜준 것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윤 권사님의 기도는 자녀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고, 동시에 강력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지금도 자녀들을 위한 기도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으며, 손주들에게도 신앙을 물려주기 위한 마음으로 날마다 기도와 모범을 이어갑니다. 윤 권사님에게 가정은 신앙의 씨앗을 심고 자라게 하는 밭이었고, 그녀는 그 밭을 기도로 일구며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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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행동으로 남긴 유산

윤명순 권사님의 삶에는 화려한 업적이나 유명한 간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것은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삶의 흔적’입니다. 신앙은 말로 전해지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질 때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권사님의 인생은 말해줍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모습, 가정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행동 속에 그녀의 믿음은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습니다. 윤 권사님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먼저 실천하고, 먼저 낮아졌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후배들은 자연스레 그녀를 따라갔고, 교회 안팎에서 권사님의 삶은 후배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진실함이야말로 윤 권사님이 남긴 가장 크고 깊은 유산입니다. 지금도 그녀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삶 전체로 신앙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조용한 믿음의 삶이 후세대에게 ‘살아 있는 신앙 교과서’로 남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골 교회에서 피어난 사명의 꽃

시골 교회에서 피어난 사명의 꽃 윤명순 권사님이 지금 섬기고 있는 행암교회는 충남 천안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위치한 작은 교회입니다. 화려하거나 큰 규모는 아니지만, 권사님은 이곳을 ‘사명의 자리’라 부릅니다. 단지 나이 들어 갈 곳이 없어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남겨두신 이유가 있다고 믿고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당의 먼지를 닦고, 음향 기기를 점검하고, 앞자리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권사님에게는 하나의 헌신이자 예배였습니다. 특히 외부에서 낯선 이들이 방문하거나, 새롭게 교회를 찾은 이들이 있을 때, 권사님은 가장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마음을 여는 역할을 자청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이 곧 신앙인의 책임이라는 고백은, 그녀가 단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권사님은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시골의 작은 교회지만, 윤명순 권사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은혜의 씨앗이 심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서 권사님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