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 삶의 평안을 누리다

  • 최관우 집사님
    1954년 01월 01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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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시작과 내면의 변화

최관우 집사님은 현재 72세이시며, 그의 신앙생활은 약 11년 전 예기치 않은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집사님은 오토바이를 운행하며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음주운전으로 인해 오토바이 운행 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갑작스럽게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그는 청소년 수련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직원으로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전, 집사님은 잠시 천주교를 다녔던 경험이 있지만, 당시에는 신앙과 밀접하게 지내지 않았음을 밝혔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전의 자신을 '이기적이고 자신만 생각하며, 남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전혀 몰랐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는 타인이 고통받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오직 자신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의 내면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집사님은 "나보다도 우선 상대방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더라고요"라고 말씀하시며, 타인의 마음과 감정에 깊이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교회를 다녀서만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결과라고 덧붙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힘이 넘쳐 자신만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삶에서 신앙이 가져온 가장 큰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로 보이며, 이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변화를 통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신앙인의 외적, 내적 변화에 대한 통찰

관우 집사님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사람의 얼굴만 보아도 신앙 유무를 알 수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집사님에 따르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얼굴이 밝고 표정이 환하며, 말하는 방식 또한 겸손하고 부드럽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말과 행동에서 겸손함이 묻어나와 편안한 인상을 준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얼굴이 어둡고 표정이 좋지 않으며, 말이나 행동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경향이 있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차이를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도 많이 느낀다고 언급했으며, 신앙의 유무가 개인의 성품과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외적인 모습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성품과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사님은 이러한 신앙의 유무에 따른 차이를 주변의 수많은 지인들을 통해서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관찰하며 신앙이 개인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실제 사례를 통해 체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집사님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표정이나 태도에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 사람들은 집사님의 표정이 예전과 달리 매우 밝아졌고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집사님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신앙생활이 그의 외면과 내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하며, 인터뷰어 역시 집사님이 신앙생활을 "참 잘하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최관우 집사님은 신앙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지에 대한 실제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신앙이 가져다주는 내면의 평화와 외적인 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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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한마음교회에 오게 된 인연과 교회의 장점

최관우 집사님이 현재 다니고 있는 신성 한마음교회에 오게 된 배경에는 깊은 인연과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신창 큰 벽 교회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현재 신성 한마음교회의 목사님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먼저 신성 한마음교회로 오게 되셨고, 이후 집사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잠시 인천으로 가서 교회에 한동안 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이 신성 한마음교회로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 소식을 통해 장로님의 도움과 연결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로님과의 인연이 신성 한마음교회로 인도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 것입니다. 이 장로님에 대해 집사님은 "활발하고 조금 특별하게 보인다"고 언급하며, 장로님 자체가 원래 그러한 성품을 지녔다고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인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장로님의 인간관계가 다른 사람보다 더 좋고 특별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성 한마음교회에 처음 왔을 때의 느낌에 대해 집사님은 "소통도 잘 되고 편안해서 좋았다"고 밝혔습니다. 교회의 분위기가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성도들이 쉽게 적응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그는 신성 한마음교회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자주 올 수 있고 오기 편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는 교회의 물리적인 접근성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며 소통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집사님은 이러한 교회의 장점들에 깊이 만족하며, "천국 가기 전까지는 이 신성 한마음교회에 뼈를 묻을 생각"이라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그는 이곳이 자신의 신앙 여정의 종착점이며, 교회가 제공하는 편안함과 소통의 장점이 그의 신앙생활에 큰 만족감을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더 이상 다른 교회로 옮길 생각 없이 신성 한마음교회에서 마지막까지 신앙생활을 이어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과 절망감

최관우 집사님의 삶은 어릴 때부터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생활이 "별로 그렇게 여유치 않고", 심지어 "많이 곤란했었"다고 표현하며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17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머슴살이를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한창 학교를 다니며 부모님의 보호 아래 편하게 지내야 할 시기에, 타인의 집에서 일하며 고된 생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 머슴살이는 약 10년 동안 이어졌으며, 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이를 "말 못할 고통"이라고 묘사하며, "지금으로 말하면은 어디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 더 고통이지"라고 덧붙여 그 당시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삶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현대의 직장생활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합니다. 머슴살이를 통해 어렵게 번 돈마저 사기를 당하는 아픔까지 겪으며, 그의 어린 시절은 이중, 삼중의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집사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앞으로 내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지"라며, "내 인생 이러다 끝나겠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으며, "나는 여기서 그냥 이대로만 살 것이지 더 이상 풀릴 것은 같지 않다"고 체념했었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수긍은 했지만, 자신의 인생이 더 나아질 리 없다는 마음은 그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 시간들을 버텨냈습니다. 약 10년간의 머슴살이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머슴살이를 그만두고 가족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삶에서 큰 변화이자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의 삶은 고난과 절망의 연속이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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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찾고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

최관우 집사님은 한때 깊은 절망에 빠졌지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삶의 희망을 다시 찾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형편이 더 나아 보였던 사람들이 자녀 문제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반면 자신의 자녀들은 별 탈 없이 잘 살아가는 것을 보며, ‘그래도 잘 풀리더라’는 감사함을 느꼈고, 이를 통해 자신은 아직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현재의 삶이 젊은 시절보다 더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는 **“놈들 잘못된 걸로 보면은 나는 그래도 여유가 있다는 얘기야”**라며 상대적으로 느끼는 여유와 평온함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절망의 시간을 지나며 단단해진 그는 지금도 “살 수가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특별한 걱정은 없으며, 가장 큰 기도 제목은 41세 둘째 아들의 결혼입니다. 교회에서 방송실과 버스 운행을 도맡아 봉사하는 둘째 아들이 좋은 인연을 만나 가정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 집사님의 기도 속에 간절히 담겨 있습니다.


자녀와 배우자의 신앙 그리고 가족의 복

최관우 집사님의 가정 신앙생활은 아내 권사님의 깊은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집사님은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이유에 대해, "아내가 신앙을 좋아하고 잘 하셔서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 천주교 신자였고, 결혼 후에도 종교 생활을 이어가다 교회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아내의 종교 활동에 대해 "가라고도, 가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며, 신앙에 대한 간섭 없이 존중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가정 안에 신앙의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든 배경이 되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큰아들 최성훈은 학업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습니다. 집사님은 자녀들의 교육에 특별히 간섭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신경 안 썼는데 그냥 우연히 잘하더라"고 표현했습니다. 큰아들은 학교 추천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당시 시장으로부터 “자식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집사님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라 고백하며, 자녀들의 평탄한 성장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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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복과 미래에 대한 바람

최관우 집사님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특별히 고통스러운 일이 없었다는 점을 ‘하나님의 복’으로 고백합니다. 그는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크게 힘든 일이 없었던 것 같아”라고 담담히 말하며, 도구로 이사 온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온 것이 은혜였다고 여깁니다. 아내 역시 “우리 집은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왔다”고 말하곤 한다며, 평온하게 흘러온 삶 자체를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전했습니다. 큰 부나 특별한 성공은 없었지만, 큰 아픔 없이 살아온 것 자체를 복으로 보는 그의 시선은 깊은 신앙적 감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는 “그냥 성도들이랑 우유무득하게 지내며 나쁘지 않게 살면 그게 잘 사는 거지요”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특별한 사명이나 거창한 목표보다, 교회 안에서 평범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전도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사람이 믿을 만해야지”라며 쉽게 전도 대상을 정하지 못하는 솔직한 마음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신성 한마음교회가 앞으로 **“성도들이 늘어나고 교회가 더 부흥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쳤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는 집사님의 ‘순수하고 밝은 모습’과 ‘소년 같은 미소’에서 오히려 따뜻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피해 주지 않으려는 그의 삶의 자세, 그리고 삶의 고비들을 담담히 지나온 마음의 넉넉함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이었습니다. 조용하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감사와 믿음으로 채워진 그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잔잔하게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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