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네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미워하냐”
기도 중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기까지 박정숙 권사님은 오랫동안 남편을 미워했다. 결혼 초기부터 이어진 다툼과 갈등, 그리고 서운함이 쌓여 “애들 때문에 산 거지, 마음은 늘 딴 데 있었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그때는 진짜 너 죽고 나 살자 이런 심정이었어요.” 그런 권사님에게 결정적인 변화의 순간이 찾아온 건, 기도 중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왜 네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미워하냐.” 그 한 문장은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눈물이 쏟아졌고,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깨달았다. “내가 하나님보다 앞서 판단했더라고요. 하나님은 사랑한다고 하시는데, 난 내 기준으로 미워하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그녀는 남편을 위한 작은 사랑의 실천을 시작했다. 아프면 병원에 가자고 하고, 약을 챙기고, 밥을 따뜻하게 차려주었다. 아직도 완전한 사랑은 어렵지만, 이전처럼 독한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운 마음은 있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기도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녀는 여전히 기도한다. 그 미움의 뿌리를 뽑기보단, 그 위에 사랑을 덮어가는 길을 걷는다. 그리고 말한다. “사랑은 노력이에요. 매일 하는 연습이죠.”
“처음엔 차가운 줄 알았어요”
현 장 목사님과의 만남이 신앙을 바꿨습니다 박정숙 권사님이 신성 한마음교회에 정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그 중심에는 현 장 목사님이 있다. 사실 처음부터 신뢰했던 것은 아니었다. 목사님이 권사님 시절이던 때, 교회에서 마주한 그는 “차가워 보이고, 도도해 보여서 쉬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 이미지와 달리, 장 목사님은 겉보다 속이 더 따뜻한, 소탈하고 진실한 신앙인이었다. “영권, 인권, 물권을 다 갖춘 분이에요. 근데 기도는 또 그렇게 많이 하세요. 누가 아프다고 하면 2시간씩 기도해줘요.” 그녀는 목사님을 보며 진심으로 감동했다. 말씀이 진하고, 교회 분위기는 따뜻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그분의 모습이 신앙의 본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는 목사님 말씀에 순종할 거예요. 목사님처럼 살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그녀의 신앙생활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을 걷고 있다. 그저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 이제는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모든 변화는 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목사님을 통해 진짜 하나님 은혜를 깨달았어요.”
“그 친구들이 지금은 함께 권사에요”
놀러 다니던 그 시절, 이제는 신앙의 동역자로 박정숙 권사님의 신앙 이야기에는 놀라운 반전의 순간이 있다. 예전에는 주일 예배를 빼먹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주일날 예배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더 좋았죠.” 그런데 지금, 그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 중 일부가 신성 한마음교회에 찾아왔다. “그 친구들이, 저를 따라 이 교회로 오게 된 거예요. 나는 그 친구들을 피해 도망치듯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같이 예배드리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 다섯 명의 친구들 중 두 명은 적응하지 못해 떠났지만, 나머지 두 명은 지금 박 권사님과 함께 권사로 섬기고 있다. 그녀는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한다. “정말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내가 바뀌고, 그 친구들도 바뀌고... 지금은 같이 신앙 이야기 나누는 동역자가 되었어요.” 그녀는 이 기적 같은 흐름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관계 속에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과거, 그 교제는 이제 복음 안에서의 교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놀러 다니던 친구들은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권사님들이 되었다.
“티 없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
두 아들에게 바치는 엄마의 기도 박정숙 권사님의 삶은 늘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정말 못난 부모 밑에서 고생 많았어요. 그런데도 우리 아들들은… 티 하나 없이 참 잘 자라줬어요.” 남편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불안정했던 시간, 그 속에서 두 아들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기 길을 걸어갔다. 큰아들 성훈은 상명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설계 일을 하며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둘째 아들 성기는 운수업에 종사하며 교회에서는 방송실 봉사를 하고 있다. “애들한테 상처도 줬고, 제대로 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죠.” 하지만 지금 그녀는, 아들들을 바라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그녀의 고백은 단순한 자랑이 아니다. 회개의 마음, 그리고 축복의 기도다. “엄마 아빤 너희 위해 늘 기도할 거야. 어디서든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면서 살아줘. 지금처럼 열심히, 건강하게.” 그녀는 말한다. 자식의 성공보다 더 바라는 건 신앙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 그리고 지금 그 아이들은 세상 어디에 있어도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서 있다.
“싫었어요, 너무 가난했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반항으로 택한 결혼,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치유 박정숙 권사님의 어린 시절은 가난이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산에서 자란 그녀는 생활력 없던 아버지와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살림이 말이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야간학교를 다녔지만 몸이 약해 중퇴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식모’로 들어가 남의 집 아이 셋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갔다. 가난은 삶만 힘들게 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그냥 그때는 세상도, 가족도 다 싫었어요.” 결혼은 중매로 이루어졌다. 스무 살, “약혼식장에서 울었다”고 말할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만남이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친정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는 반항심으로 바뀌어 결혼을 밀어붙이게 되었다. “그땐 그냥, 아버지가 싫어서 내 마음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선택은 쉽지 않은 결혼 생활로 이어졌고, 긴 갈등의 시간을 지나 결국 그녀는 신앙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가난과 상처를 이긴 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지금 생각하면, 예수님 만나지 않았으면 정말 아무 희망도 없었을 거예요.”
“이 직장이 제 선교지예요”
83명 동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 박정숙 권사님은 현재 순천향대학교 병원에서 청소 업무를 하고 있다. 그녀는 이전에 무려 14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그 시간조차 감사하다고 말한다. “요양보호사 일 그리웠어요. 그때는 사람 손도 잡아주고, 말도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자리에서 또 다른 사명을 느끼고 있다. “지금 회사엔 믿지 않는 사람이 83명이나 돼요. 그 사람들이 다 전도 대상이에요.” 하루하루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녀는 ‘이곳이 나의 선교지’라고 믿는다. 현재는 6인 1조로 움직이는 팀 단위 업무를 하고 있고, 자신이 나이로는 가장 맏언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올 만큼 건강한 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이고,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성실하게 일하려고 해요. 그게 복음 전하는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일이 끝난 후 지친 몸으로 교회에 돌아오지만, 그녀는 “피곤해도 예배만큼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다고 믿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복음 전하고 싶어요.” 지금 그녀는 하루하루를 기도의 발걸음으로 걷고 있다. 일터가 곧 예배의 자리가 되고, 동료들이 복음의 대상이 되는 곳. 그녀는 그곳에서 말없이 전도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저에게 사랑이에요”
회개의 눈물, 그리고 천국 잔치의 날까지 박정숙 권사님은 말한다. “예수님은 저에게 그냥, 사랑이에요.” 그 한마디 안에 그녀가 걸어온 길과 쏟아낸 눈물, 그리고 변화된 삶이 모두 담겨 있다. “사람을 미워한 것도 많고, 교회에서 이간질처럼 말한 것도 많았어요. 다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녀는 **‘천국 잔치’**를 기다린다. 그 자리에 함께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 영상을 통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두었다. 그것은 진심 어린 회개와 용서의 고백, 그리고 사랑으로 살고 싶다는 다짐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건강하게, 말씀대로, 목사님께 순종하며 살고 싶어요. 그리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그녀는 신성 한마음교회를 “주님의 핏값으로 세워진 교회”라 말하며, 이 교회가 지역과 마을의 영혼들을 살리는 곳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기도의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는 순종하고 싶어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에요.” 지금, 박 권사님의 하루는 작고 조용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