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이유
– 신앙의 공백기,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길- 김성락 집사님은 한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다. “정확히는 한 10년 정도예요. 이십 년은 아니고요.” 신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정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세 아이를 홀로 키워야 했다. “아이들이 커가는 시기였고, 집안도 많이 어수선했어요. 정신이 없었죠. 어디에 마음 둘 겨를도 없었어요.” 그러나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려다 보니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처음엔 아이들만 교회에 보냈는데,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함께 나가기 시작했죠.” 그렇게 다시 예배의 자리에 앉으면서, 멀어졌던 믿음은 서서히 그의 삶에 다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했고, 아내 역시 함께 교회를 다니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주었다. “힘들었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어요. 교회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모든 게 조금씩 안정되더라고요.” 떠났던 시간이 부끄럽기보다, 돌아올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그의 고백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늘 열려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해준다.
죽음의 문턱에서 들은 음성
– “걱정 말아라” 주님이 하신 그 한마디- “작년 1월 8일이었어요. 갑자기 심근경색이 와서 쓰러졌고, 중환자실에 실려 갔죠.” 김성락 집사님은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의식을 잃고 18일간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시간 동안, 그는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을 경험했다. “그때 주님을 두 번 만났어요. 분명히, 또렷하게요.” 그는 말한다. “양쪽에서 불가마처럼 뜨거운 기운이 목까지 조여오는데,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 걱정 말아라, 하시더라고요.” 악몽 같던 그 순간, 주님의 목소리는 그의 영혼을 붙드는 유일한 평안이었다. 이어진 환상 속에서 그는 상여를 메고 춤추는 사람들, 줄지어 들어가는 군중, 자신에게 열쇠꾸러미를 건네며 “이쪽으로 가라”고 말하던 누군가의 손길을 또렷하게 보았다고 말했다. 심판의 장면도 기억 속에 깊게 새겨져 있다. “여섯 명이 단상 위에 앉아 있었고, 나는 무릎 꿇고 있었어요. 살아남을지, 떠날지를 재판하는 모습이었죠.” 결국 그곳에서도 주님은 그를 생명의 쪽으로 인도하셨다. “뒤편에 예수님이 서 계셨고, 그 모습이 너무나 선명했어요. 주님이 날 살려주신 거죠.” 이 체험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김 집사님에겐 분명한 구원의 확신,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이유였다. “그때 이후로, 겁나는 게 없어요. 하나님이 계신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두 번째 인생, 다시 주어진 기회
–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또 하나의 동행 - “아내가 마흔에 세상을 떠났어요. 당뇨였죠.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몸이 많이 망가졌었어요.” 김성락 집사님에게 아내의 죽음은 너무 이른 이별이었고, 세 아이를 남겨둔 채 홀로 남겨진 현실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을 하나님은 오래 허락하지 않으셨다. “3년쯤 지나 다시 좋은 분을 만났어요. 덕분에 다시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됐죠.” 그가 만난 두 번째 아내는 신앙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였다. “교회를 같이 다녔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갔어요. 그 덕분에 힘든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혼자였을 땐 버겁기만 했던 삶도,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니 다시 안정을 찾았다. “아이들도 많이 자라 있었고, 집안도 차츰 나아졌죠.” 그는 말한다. “하나님이 다시 기회를 주신 것 같아요.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다시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게.” 이 두 번째 인생은 단지 동반자를 얻었다는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고통 너머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하나님의 손길은, 그렇게 다시 그의 삶을 일으켜 세웠다.
딸의 죽음, 그리고 다시 붙잡은 믿음
–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둘째 딸이… 코로나 터질 무렵에 유방암이 왔어요. 치료를 제때 못 받아서 결국…” 김성락 집사님의 목소리는 잠시 멈췄다. 딸을 떠나보낸 아버지의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담담할 수 없다. 그는 그때를 “말로 못 할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 아픔 속에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 딸이 교회도 열심히 다녔어요. 그래서 더 안타까웠죠.” 하지만 그는 원망 대신 기도로 하루를 살았다. 딸이 남긴 손주들을 직접 맡아 기르고, 외손주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다시 한 번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버텨야 했다. “지금 제가 후견인이에요. 하나는 대학교 다니고, 하나는 고3이에요. 졸업할 때까지, 끝까지 잘 감당해야죠.” 죽음은 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품 안으로 더 깊이 이끌었다. “첫 부인도 마흔에 죽고, 두 번째 부인도 20년 함께하다 2015년에 떠났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만나는 사람마다 착하고, 신앙 좋은 분으로 붙여주셨어요.” 끝없는 이별의 연속이었지만, 김 집사님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감사했다. “지금 식구도 교회 집사예요. 정말 열심히 섬기고 있어요.” 그렇게 김성락 집사님의 삶은, 수없이 부서지면서도 다시금 믿음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예배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다
– “하루의 절반은 교회에서 삽니다” - “지금은 집보다 교회에 더 오래 있어요. 하루의 절반은 교회에 있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뒤, 김성락 집사님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교회는 이제 그에게 삶의 중심이자 안식처다. 주중에도 틈만 나면 교회에 들르고, 예배가 있는 날은 누구보다 먼저 자리를 지킨다. 그에게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닌, 다시 살아난 생명을 붙들어준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따로 어렵게 안 해요. 그저 애들 잘 되게 해달라고, 손주들 믿음 지켜달라고 기도하죠.” 자녀들과 손주들을 위한 기도는 이제 그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특히 손수 키우고 있는 외손주들이 무사히 대학을 마칠 때까지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에게 기도는 먼 하늘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매일의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다. 믿음의 깊이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누가 뭐라 하면 시험 들고, 마음 상했죠.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요. 선한 마음이 많이 생겼어요.” 죽음 이후, 그는 정말 달라졌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목사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며, 성도들과도 부드럽게 마음을 나눈다. 그렇게 그의 신앙은 더 깊고 단단해져 갔다. 지금 그는 교회의 남성교회 회장으로 섬기며,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다한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한마음이에요. 무슨 말을 해도 잘 따라주고, 목사님 말씀도 잘 순종해요. 그래서 고맙죠.” 다시 살아난 그의 인생은, 예배의 자리에서 진짜 생명을 얻은 사람의 증거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내가 본 예수님
– 중환자실, 그날 밤 주님이 오셨습니다 - “양쪽에서 불가마처럼 조여오더라고요. 목까지 숨이 막히는데… 그때 예수님이 오셨어요. ‘걱정 말아라’ 하셨죠.” 김성락 집사님은 중환자실에서 18일 동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그 시간, 그는 설명할 수 없는 환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았다. 온몸을 짓누르던 고통 속, 주님은 조용히 다가오셨다. “정말 선명했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얼굴을 들여다보셨고, 말씀하셨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그는 환상 속에서 장례 상여를 메고 춤추는 사람들, 줄을 지어 죽음으로 들어가는 군중, 그리고 자신에게 열쇠꾸러미를 건네며 “이 문으로 가라”고 안내하던 사람까지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그 문으로 안 가면 안 된다고, 열쇠를 주더라고요. 주님이 살리신 거예요. 틀림없이요.” 또 다른 환상에선 심판대에 무릎 꿇고 있었다. 여섯 명의 재판관 앞에서, 그는 “죽은 자냐, 살아날 자냐”를 판단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재판관들 뒤편, 예수님이 서 계셨다. 하얀 옷을 입고, 양떼를 인도하시던 모습 그대로. “그분이 계셔서 제가 살아난 거예요.” 그 체험 이후, 그는 확신하게 됐다. “이건 상상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저를 살리신 거예요.” 죽음을 지나온 그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믿음의 개념이 아니다. 살아서 다가오신 구원의 주님이다. 그분이 계시다는 확신이 김 집사님을 담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 겁이 없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내가 봤으니까요.”
하나님이 살려주신 사람
– 김성락 집사님의 삶이 전하는 조용한 증언 - 김성락 집사님의 이야기는 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의 삶은 분명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놀라운 기적의 연속이었다. 세탁소 뒤편 작은 교회에서 시작된 신앙은, 때로는 멀어지고 흔들렸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몇 번이나 견디고, 생과 사의 경계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난 체험까지—그의 삶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가 촘촘히 박혀 있다. “살려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병상에서 드렸던 약속은, 지금도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교회에서 보내며 기도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손주들을 위해 매일 무릎 꿇는다. 남성교회 회장으로서도, 평범한 한 성도로서도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교회를 세우고 있다. 김 집사님은 끝까지 고백했다. “이 교회는 한마음이에요. 다들 잘 따라주고 서로 이해해줘요. 목사님도 항상 기도해주시고, 그래서 고맙죠.” 그리고 마지막 인사는 천국을 향한 초대였다. “저 먼저 갑니다. 하지만 꼭 예수님 믿고,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죽음을 지나 본 사람의 눈빛은 다르다. 그의 눈빛엔 두려움이 없었다. 대신 깊은 평안과 담담한 기쁨이 있었다. 김성락 집사님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말해준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지금도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