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와 신비로운 응답
약 50년간의 신앙생활 동안 최말림 권사님에게 가장 큰 경험은 바로 은사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은사를 받기 전에는 밤새도록 기도해도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았고, 울고불고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사를 받은 후에는 밤낮으로 제단에 나와 기도할 수 있었고, 밤에는 제단에서 잠들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기도하는 강행군이었지만, 권사님은 전혀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권사님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마음에 감동했다 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간구하면 주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권사님은 "걱정 근심 말아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직접 듣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평생의 감사, 건강과 자녀의 축복
최말림 권사님은 하나님께 가장 감사한 것으로 자신의 건강과 편안한 삶을 꼽습니다. 평생을 고단하게 일하며 자식들을 키웠지만, 하나님이 도우셔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권사님은 93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고생했던 허리 통증 외에는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녀가 받은 가장 큰 복 중 하나는 자녀들이 잘 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큰 사위는 장로가 되었고, 두 딸 모두 권사가 되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어 큰 기쁨이라고 합니다. 권사님은 현재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며,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 뜻이 계시면 천국에 들어가도 여한이 없다 고 말할 정도로 삶에 대한 깊은 만족과 평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구 교회를 향한 헌신과 자부심
최말림 권사님은 24세에 이 마을에 와서 70년 동안 한 집에 살았으며, 그 중 50년 가까이 가구 교회만을 다녔습니다. 그녀의 집터는 옛날 교회가 있던 자리이기도 합니다. 가구 교회는 과거에는 100명 가까이 되는 성도들이 모였던 큰 교회였지만, 지금은 30여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활기가 넘칩니다. 권사님은 가구 교회가 자랑할 만한 점이 많다고 말합니다. 특히 장로님들이 헌금도 잘 내고 교회를 잘 이끌어 재정이 풍부하며, 교회 내에 분란 없이 평안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김강희 목사님이 두 번째로 가구 교회에 부임한 것을 큰 복이자 자랑으로 여깁니다. 이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립니다. 가구 교회는 어린이들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으며, 동네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90년 삶의 지혜: 인생은 나그네길
9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최말림 권사님은 인생을 '나그네길'에 비유합니다. 즐거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한순간처럼 지나갔다고 회고합니다. 젊은 시절 21세(혹은 23세)에 아이를 업고 와 남의 집살이를 시작했던 과거와, 지금 살고 있는 낡고 추운 집을 새로 짓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잠시 드러내지만, "후회 안 한다"며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권사님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이웃 권사님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을 언급하며, 이제는 언제든 하나님이 부르시면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염려할 것이 없고, 요즘은 더욱 즐겁게 살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간절한 기도 제목과 미래를 향한 소망
현재 최말림 권사님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자녀들의 신앙생활입니다. 슬하에 세 아들과 두 딸이 있었으나, 큰아들이 4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딸과 사위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장로와 권사가 되었지만, 살아있는 두 아들은 아직 믿지 않아 권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특히 돌아가신 큰아들의 아들, 즉 손자가 교회에 나가지 않아 권사님의 발길을 재촉하게 합니다. 권사님은 손자가 교회에 잘 다니고 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염려나 근심은 없어진 지금, 권사님은 앞으로 가구 교회가 더욱 부흥 발전하고, 성도들이 많이 와서 교회가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가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재단이 하늘나라 끝날 때까지 부흥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