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세월, 주보 제작과 안수집사 25년
정화석 장로님은 교회를 섬기는 데 있어 다양한 봉사 활동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교회 주보를 모두 손수 제작했던 경험입니다. 목사님에게 주보 내용을 받아 등사기로 밀어 인쇄했으며, 당시 130장에서 150장 정도를 인쇄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직접 만들었던 옛 주보들이 현재는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 재정의 회계 장부를 관리했으며, 이 장부들도 현재 목사님이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정 장로님은 안수집사로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섬겼는데, 이는 당시 교회에 은퇴를 기다리는 많은 선임 장로님들이 있었고, 본인의 호적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적어 장로 임직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결국 문 장로님과 함께 장로 임직을 받게 되었는데, 문 장로님은 그보다 1년 늦게 임직을 받았지만 같은 날 함께 임직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시련과 하나님의 은혜
정화석 장로님에게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는 아내 김 권사님의 생명을 구한 경험입니다. 약 19년 전(2006년경), 김 권사님은 간경변증으로 사경을 헤매는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성서병원에서는 간의 절반만 남아있어 생명을 살릴 수 없고, 오직 간 이식만이 살 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간 이식을 위해 서울 삼성병원으로 가야 했으며, 당시 예상 이식 비용은 2억 5천만 원에 달했고 의료보험 적용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는 한 달밖에 살 날이 남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자녀들 모두 B형 간염 보균자여서 간 이식 공여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포항중앙교회 김광식 목사님과 김종만 장로님(정 장로님의 큰 처남)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엄청난 비용 때문에 포기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항기독병원 원목 목사님의 딸이 서울 삼성병원에 도움을 주어, 입원이 거절되었던 아내가 3일 만에 기적적으로 입원할 수 있었고, 5개월간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리모델링 헌금과 놀라운 재정 기적
아내의 간 수술과 관련하여 병원에서 2억 5천만 원의 수술비를 요구하자, 정화석 장로님은 그 큰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당시 교회 리모델링을 위해 장로 임직을 받은 문창섭 장로님은 1천만 원을 헌금했지만, 정화석 장로님은 돈이 없어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때 그는 1.2톤 트럭을 가지고 있었는데, 석보면 전체에 트럭이 10대도 안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인천 부두와 평택 부두로 짐을 실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음력 정월 열엿샛날, 교회에서는 윷놀이가 한창이었지만, 정 장로님은 리모델링 헌금을 해야 한다는 마음에 밤새 운전을 해서 짐을 운반했습니다. 이 운송으로 받은 35만 원의 운임을 단 10원도 쓰지 않고 교회 리모델링 헌금으로 전부 바쳤습니다. 이 놀라운 헌신 이후, 그의 삶에는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내의 수술비 등으로 농협에 5억 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되었으나, 장로 임직 후 5년 만에 이 모든 빚을 갚았고, 트랙터를 사는 등 6억 원 이상을 상환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 은혜로 이루어진 기적이며, 아내를 살리고 교회의 축복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그는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앙 공동체의 리더, 가족 신앙과 교회의 시험
정화석 장로님은 자신의 가족 또한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의 큰 자녀는 현재 안동서부교회의 안수집사이며, 며느리의 친정(울산)도 목회자 집안으로 알려져 가족 전체가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막내 아들은 소방 도청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고, 며느리는 예천 자치단체에서 영세민 담당 업무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교회는 그의 삶에서 여러 번의 기적을 경험했지만, 교회 건축 당시에는 마귀의 역사가 심했다고 회상했습니다. 황희종 집사(당시)가 정화석 장로님, 문창석 장로님, 정훈우 목사님, 김태수 장로님 등을 교회 돈을 가로챘다며 도둑으로 모는 누명을 씌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 장로님은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시공자 박성수 집사의 억울한 누명까지 감싸 안으며 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당시 마을 동장이었으며, 그 이후로 마을의 이장들 또한 모두 가구교회 출신이 되었다고 언급하며, 교회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은 삶과 교회를 향한 메시지
정화석 장로님은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다른 사사로운 욕심 없이 오직 교회에 모든 것을 던져 헌신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는 교회가 최우선이며, 특히 교육자(목사님, 전도사님)를 첫째로 섬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육자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무조건 섬겨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가구교회는 자립 교회로서 해외 선교비로 매달 55만 원을 보내고 있으며, 최근 맥추 감사 헌금으로 478만 원, 추수 감사절에는 보통 8백만 원에서 천만 원 가까이 헌금이 모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는 선임 장로로서 자신과 문 장로님이 앞에서 교회를 리드하고 선두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며, 장로들이 뒤로 물러서면 교회의 기둥이 흔들릴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새 목사님을 청빙할 때 한 표 차이로 결정될 만큼 치열했지만, 누가 오든지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으로 마땅히 섬겨야 한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그는 당회원들에게 목사님과 사모님을 꼭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하는 등 주의 종을 섬기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당부하며, 뒤에서 험담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를 경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구교회 성도님들과 목사님에게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잘 전해주시고, 모든 성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 사랑으로 옹호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당부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믿음을 넘어 봉사 활동을 잘하고 모든 것이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최고임을 명심하여,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