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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임덕조권사님

나는 경상북도 영덕군 매정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어. 그 마을은 말 그대로 ‘믿음의 마을’이었지. 마을 주민들 거의 전부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었고, 주일 아침이면 종소리만 울려도 알아서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아이고, 그때는 예배 빠지는 사람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지. 아버지는 시골 농부였지만, 믿음으로 단단하신 분이었어. 새벽이면 꼭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주일엔 손에 뭐 들고 나가는 일은 절대 없었어. 장을 보러 가는 것도 금기였고, 바느질 하나도 안 했어. 그만큼 주일은 거룩한 날로 여겼지. 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예배와 기도, 찬송이 자연스러웠고, 교회는 내 숨 쉴 곳 같았어. 지금도 생각나. 우리 어머니가 된장국 하나 끓이는 것도 토요일 밤에 다 해놓고, 주일 아침엔 그저 데우기만 했지. 그게 믿음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예의였어. 아이들 옷도 다려놓고, 새 신발 신기고, 단정하게 머리 빗겨서 교회 보내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해. 그런 집안에서 컸으니, 믿음이라는 게 따로 배운 게 아니라 그냥 몸에 밴 거야. 나는 그 시절이 너무 고맙고, 그 마을이 그리워. 사람들 다 가난했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했고, 어려울수록 더 기도하고 서로 도왔어. 믿음이 뿌리처럼 마을에 내려 있었던 거지. 그 믿음의 땅에서 자란 나는 지금도 그 향기를 잊지 못해. 신앙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거라는 걸 나는 매정 마을에서 배웠지.

김판돌 김춘라 부부

춘라씨는 봉림불 청년이고 판돌씨는 너구마을 처녀일 때 연애를 했다. 연애 중에 군대에 갔고 월남에 맹호부대로 파견되었다가 제대하고 결혼했다. 2남1녀를 낳았고 모두 결혼하여 포항에 나가 살면서 5명의 손자녀를 낳았다. 처음에는 쌀농사와 시금치 농사를 지었다. 해수갑문이 설치되어 경제적으로 호전되었다. 해수욕장이 생긴 것은 경제적으로 아무 영향이 없었다. 20년 전부터 시금치 농사를지어 현금수입이 늘어났다. 그러나 10년 전쯤부터는 시금치에 연작의 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은 땅에 여러 해 동안 같은 작물을 생산하니 땅이 피로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수확이 전만 못하다. 계절에 따른 특별한 동네 행사는 없고 정월 보름날 모여서 윷을 놀고 마을 회의를 하는 정도는 하고 있다.

말썽쟁이 아빠의 미국생활

가족사진…. 큰아들 벤자민 워싱턴아시아태평양변호사협회 회장 취임식에서 …

김순점집사님

믿음의 씨앗이 맺은 은혜의 열매

어릴 적, 들판에서 패랭이꽃을 꺾어 놀던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의 순수한 마음과 자연의 따스함이 여전히 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생애에 크고 놀라운 은혜로 함께하셨음을 믿으며, 영덕읍교회 심경순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새 생명,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피어나다

백합처럼 아름답고 향기가 좋은 영덕읍교회 박연락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