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라씨는 봉림불 청년이고 판돌씨는 너구마을 처녀일 때 연애를 했다. 연애 중에 군대에 갔고 월남에 맹호부대로 파견되었다가 제대하고 결혼했다. 2남1녀를 낳았고 모두 결혼하여 포항에 나가 살면서 5명의 손자녀를 낳았다. 처음에는 쌀농사와 시금치 농사를 지었다. 해수갑문이 설치되어 경제적으로 호전되었다. 해수욕장이 생긴 것은 경제적으로 아무 영향이 없었다. 20년 전부터 시금치 농사를지어 현금수입이 늘어났다. 그러나 10년 전쯤부터는 시금치에 연작의 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은 땅에 여러 해 동안 같은 작물을 생산하니 땅이 피로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수확이 전만 못하다. 계절에 따른 특별한 동네 행사는 없고 정월 보름날 모여서 윷을 놀고 마을 회의를 하는 정도는 하고 있다.
김명순 권사님은 1944년에 태어나 올해 80대 중반의 연세이십니다. 권사님의 젊은 시절은 신앙생활과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심지어 교회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고, 기도하는 방법도 전혀 몰랐다고 회고하십니다. 당시 권사님 가정에는 불교를 믿는 어른들이 계셨기 때문에, 교회는 절대로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으로 인식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교적 배경 속에서, 권사님은 스스로 미신을 지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불교 어른들의 영향 아래 교회와는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사셨습니다. 권사님의 초기 삶은 청김면에서 시작되어 금막으로, 결혼 후 방전을 거쳐 현재의 흥구리 동네로 거처를 옮기는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동네의 전반적인 어려움 속에서, 권사님은 이처럼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신앙 없는 삶을 살아가셨으며, 이는 훗날 찾아올 극적인 신앙 체험의 배경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