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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윤국환장로님

나는 금곡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금곡에서 살고 있어요. 어릴 땐 이 시골이 너무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젊은 날엔 도시로 나갔고, 사업도 하고, 인생의 바다를 참 많이 헤맸지요. 그런데 돌고 돌아 다시 금곡으로 돌아왔을 땐, 이 땅이 얼마나 귀하고 편안한지 새삼 깨달았어요.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지만 정이 있었어요. 친구들과 산에서 뛰놀고, 들에서 일 도우며 컸어요. 어른들 말씀은 무섭기도 했지만 그만큼 삶을 배울 수 있었죠. 그때 배운 순종과 성실이 제 인생의 밑바탕이 되었어요. 도시에서 오래 살다 보니 마음도 거칠어지고, 세상 욕심도 많아졌어요. 사업이 잘될 땐 세상이 내 것 같았지만, 무너질 땐 참 처참했지요. 그렇게 한계에 부딪힌 어느 날,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어요. "돌아가자. 하나님께로, 고향으로." 그렇게 다시 금곡으로 돌아왔어요. 낡은 집을 고쳐 살고, 밭을 일구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죠. 젊을 땐 몰랐던 은혜를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내 삶의 시작과 끝,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요. 고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불러주신 자리였어요.

김분자권사님

업로드중입니다.나는 1940년 울진 바닷가에서 태어났어요. 바다가 지척에 보이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지요. 우리는 네 남매였고, 나는 셋째 딸이었어요. 막내는 아니었지만, 언니와 함께 살림을 돕고 동생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농사일과 집안일이 겹치면 아이들도 일손이 되어야 했지요. 그 시절은 다들 가난했어요. 고무신 한 켤레 아껴 신으려고 장독대 옆에 벗어두고 맨발로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우리에겐 익숙한 삶이었어요. 그렇다고 항상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자매들과 강냉이 볶아 먹고, 바닷가에서 조개 줍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정겹고 따뜻해요. 학교는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몇 년만 다니다가 일을 거들어야 했지요. 그래도 그때 배운 글 덕분에 지금도 성경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몸에 밴 성실함과 책임감이 지금까지도 저를 지켜주는 힘이 되었어요. 유년 시절, 고된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이어지는 길이 그렇게 천천히 열렸던 것 같아요.

흙에서 와서 흙으로, 그러나 흔적은 남는다

나는 1949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어. 솔직히 말하면, 어린 시절은 참 힘들었어. 6.25 전쟁 직후라 먹을 것도 부족했고, 배고픈 게 일상이었지. 그나마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밀가루 배급이 나오면서 좀 나아졌어.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셋이 살았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20살 때부터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그냥 앞만 보고 살았지.

믿음으로 이어진 삶

나는 어릴 적부터 우리 부모님 덕에 신앙을 쭉 지켜왔지. 우리 아버지가 영수였거든. 그때 일제강점기였는데, 주일날 학교에서 나무하러 가라 하니까 아버지가 나무는커녕 절대 가라 하지를 않으시더라고. 그래서 정학도 당하고, 참 어려운 시절이었어. 그래도 신앙이 있으니까 이 모든 걸 견딜 수 있었지. 만주에서도 살았고, 해방 후에 대구로 와서 살면서도 가난했지만, 하나님 믿고 여기까지 온 거야.

황분선 윤상수 부부

마을회관 맞은편에 사는 노인회장님 부부이다. 파평윤씨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마을에서 살았다는 윤상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이장을 맡아 일했으며 임기가 끝난 뒤에 다시 이장을 맡아 임기를 두 번 맡았다. 부인 황분선씨는 신광면 기일리에서 시집와서 2남 2녀를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곡강마을역사

곡강마을 자체의 역사는 정리된 적이 없다. 그러나 가까운 흥해에 관한 역사적 자료가 많으므로, 그 중에서 곡강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요약하여 곡강의 역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765년 흥해군 지도이다. 왼쪽에 둥근 성이 흥해읍이며, 두 갈래로 갈라진 강이 곡강이다. 그 아래 만입한 부분에 '봉림호'라고 쓰여 있어서 당시에는 이곳이 호수였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