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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신앙과 공동체, 역사의 산증인

박형기 장로의 신앙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운 날에도 새벽 기도를 다니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회고한다. 어머니의 고향인 청송에는 교회가 없었으나, 시집와서 성법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 새벽 기도의 모습은 지금도 장로님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다. 박 장로는 그 어머니의 기도가 자신의 신앙의 뿌리가 되었다고 믿으며, 지금도 어머니의 믿음을 따라 힘닿는 데까지 새벽 기도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굳건한 믿음은 어머니가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임을 강조하며, 그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임을 밝혔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그러나 흔적은 남는다

나는 1949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어. 솔직히 말하면, 어린 시절은 참 힘들었어. 6.25 전쟁 직후라 먹을 것도 부족했고, 배고픈 게 일상이었지. 그나마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밀가루 배급이 나오면서 좀 나아졌어.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셋이 살았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20살 때부터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그냥 앞만 보고 살았지.

최유진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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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19년의 신앙 여정

“그날부터 저는 진짜 신앙을 시작했습니다” 삶이 고단할수록, 마음은 조용히 누군가를 찾는다. 신성 한마음교회의 박정숙 권사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져 “너 죽고 나 살자”는 말이 현실처럼 다가오던 날들. 지치고 텅 빈 마음을 안고 친구를 따라 나섰던 곳이, 서산의 한 순복음 교회였다. 처음엔 친구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뿐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서 마주한 분위기는 전혀 예상과 달랐다. 따뜻한 눈빛과 미소, 말없이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그때는 정말 갈급했어요. 성당은 어릴 적부터 다녔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말만 다닌 거였어요. 삶에 쫓기다 보니 신앙은 늘 뒷전이었죠.” 그날 이후, 그녀는 매주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예배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는 사건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그때부터가 제 신앙의 진짜 시작이었어요.” 이전의 종교생활이 형식적인 ‘이름표’였다면, 이제는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놓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 시작은, 지금껏 그녀를 이끌어온 19년 신앙 여정의 첫걸음이 되었다.

노순자 집사님

이미자 권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