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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정병두 이귀술 부부

영일정씨의 입향조는 정병두씨의 7대조였다. 이귀술씨는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에서 이 마을로 시집와서 2남 1녀를 낳았다.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하여 포항과 영천에 살고 있으며 7명의 손자녀를 낳았다. 처음에는 오직 농사만 지었다. 포구가 없으므로 어업은 하지 않았고, 일시적으로 재첩이 잡혀서 재첩잡이를 해서 돈을 조금 번 적도 있었다. 그 뒤에는 해수욕장 배후마을로 민박업이 성행했다. 온 마을이 민박 손님을 받아서 바빴지만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고속도로가 나면서 민박이 안 되기 시작했다.

김상복 할머니

친정은 영덕 회동이었다. 이 마을의 최수덕씨에게 시집와서 2남 4녀를 낳았는데 남편이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들은 모두 포항에 살고 딸들은 포항과 부산에 산다. 손자녀들이 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것이 희망이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낯선 고장에 풍속이 달라서 많이 곤란했다. 바닷가 생활이 마음에들지 않고 살림도 곤궁하였다. 당시에는 배를 곯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떠나고 75세 되던 무렵부터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지금은 시각장애 상태에 있다. 가까운 이웃 나들이는 하지만 생활은 불편하다.

김옥자 할머니

친정은 달전이고 66년도 23살에이곳으로 시집을 왔다. 친정은 아버지때부터 과수원을 했다. 지금도 저영천에서 사과밭을 한다. 곡강에시집와서는 매일 시금치 농사를 짓고산에서 고사리 뜯었다. 안춘선 할머니와 친구인데 시집와서 부터 같이 지냈다고 한다. 안춘선 할머니는 김옥자할머니보다 한 살 어리고 여기가 고향 동네라고 한다. 항상 안춘선 할머니가 놀러 와서 함께 계신다. 자녀는 아들 2명에 딸 1명을 낳았다. 자녀들은 다 결혼했다. 작은 아들은 울산 현대에서 일하고 맏이는 흥해에 있고 부동산을 한다. 딸은 국민은행에 있다. 사위는 조선선재회사 일 때문에 서울에 있다. 할머니는 두 외손녀를 10년 동안 봐주었다. 아이가 워낙 착했고 10년을 키우다 보내려니 참 섭섭했다고 한다. 큰외손녀가 공부를 잘해서 올해장관상을 탄다고 한다. 친손자는 큰 아이가 13살로 내년에 중학교 간다.

이정애 강흥수 부부

흥수씨 부부는 포항 시내에서 살다가 집을 지어 곡강에 왔다. 자녀는 딸 1명에 아들 1명을 두었다.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직장 다닌다. 처음 곡강에 왔을 때는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 이 집이 당시 동네에서 유일한 2층집이었는데 매우 신경써서 지은 집이었고 공장이 하나도 없어서 경치도 좋았다. 그때는 농사도 짓지 않았다. 흥수씨는 원래 현대중공업에서 10년 가까이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IMF가 터지고 회사에서 퇴직하면서 98년도에 버섯농장을 시작 했다. 정애씨는 남편이 버섯을 키우자고 했을 때 대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시작했다고 한다. 버섯을 기를 때 온도, 습도를 잘 맞춰야 하는데 잘못 해서 버섯이 다 죽기도 했다. 온갖 고생 끝에 방법을 터득해서 지금은 농사 경력이 20년 된다. 환풍기 시설, 공중에서 움직이는 트레일러 등 농장설비를 흥수씨가 손으로 만들었다.

강흥수 이정애 부부

흥수씨 부부는 포항 시내에서 살다가 집을 지어 곡강에 왔다. 자녀는 딸 1명에 아들 1명을 두었다.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직장 다닌다. 처음 곡강에 왔을 때는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 이 집이 당시 동네에서 유일한 2층집이었는데 매우 신경써서 지은 집이었고 공장이 하나도 없어서 경치도 좋았다. 그때는 농사도 짓지 않았다. 흥수씨는 원래 현대중공업에서 10년 가까이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IMF가 터지고 회사에서 퇴직하면서 98년도에 버섯농장을 시작 했다. 정애씨는 남편이 버섯을 키우자고 했을 때 대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시작했다고 한다. 버섯을 기를 때 온도, 습도를 잘 맞춰야 하는데 잘못 해서 버섯이 다 죽기도 했다. 온갖 고생 끝에 방법을 터득해서 지금은 농사 경력이 20년 된다. 환풍기 시설, 공중에서 움직이는 트레일러 등 농장설비를 흥수씨가 손으로 만들었다.

김태자 최팔방 부부

김태자권사는 경산 육동이 고향이다. 고종 형부가 중매를 서서 22살에 곡강으로 시집왔다. 처음에 남편은 포스코에 다니다가 나중에 두호동에서 고기를 잡았다. 두호동에서 3년을 살았는데 술과 담배를 사는데 돈을 다 써서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땅을 파며 살고 싶어서 곡강에 들어왔다. 힘들게 살았어도 두호동에서 있었던 게 추억이라고 한다. 새댁일 때 바닷가에서 주낙을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이 참 재미있었다. 처음 곡강에 왔을 때는 현재 김성자 권사님이 살고 있는 집에서 살다가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자식은 아들이 2명 있다. 작은 아들이 작년 4월에 결혼했다. 아들 이름이 주은, 주영인데 각각 주의 영광, 주의 은혜라는 뜻이다. 큰 아들은 벌써 자식이 3명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