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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아니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는 권사님의 첫마디에는 묘한 단단함이 담겨 있었다. 1955년 서울 문래동에서 태어난 그녀의 삶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과 생존의 연속이었다. 어릴 적 계모의 학대로 인해 다리를 다쳤고, 그로 인해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다. 결국 경찰의 손에 이끌려 부평 성모 고아원에 맡겨지던 날,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의 존재를 마음에서 지워야 했다. 그곳에서 수녀님들의 손길 아래 수술을 받고 겨우 걸음을 뗐지만, 몸보다 더 아픈 것은 버려졌다는 기억이었다. “살라니까, 살라고 하시니까, 살아야 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누구도 그녀에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누군가의 보호 없이 혼자 살아남기 위해, 그저 생존하기 위해 그녀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처음으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은 “일”이었다. 몸이 불편한 그녀에게 안정적인 직장은 허락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노점부터 노가다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포장마차도 했고, 나무장사도 했고, 그냥 닥치는 대로 했어요. 애들 굶길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문순선 권사님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삶은 감히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견고한 믿음의 여정이기도 하다. 신앙은 단 한 번에 시작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천주교 고아원에서 흘러나온 찬송가와 기도 소리, 그리고 수십 년 후 홍성의 어느 전파상 사모님이 건넨 전도의 손길. 그 모든 만남은 권사님의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삶은 무너졌지만, 믿음은 서서히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문순선 권사님의 이야기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진솔하고, 그래서 더 따뜻하다. 버려졌지만 살아야 했고, 맨몸으로도 기어이 집을 짓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기까지—그녀의 인생은 ‘은혜’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제 그 여정을 따라가 보려 한다.

주님의 손에 붙들린 인생

김성락 집사님의 신앙은 1988년, 세탁소 뒤편 개척 교회를 우연히 찾아가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주일이니까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목사님의 따뜻한 인도 아래 자연스레 교회에 발을 들였고, 이후 10년 가까이 신앙을 떠났던 시간도 있었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과 세 자녀를 홀로 키워야 했던 현실 앞에선 믿음을 붙들 여유가 없었다. 다시 교회를 찾은 건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신앙은 회복되었고, 이후 재혼을 통해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월, 그는 심근경색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갔고, 죽음의 문턱에서 주님을 만나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걱정 말아라”는 예수님의 음성과 생사의 경계에서 본 환상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살려주시면 열심히 하겠다”는 병상 위의 약속대로, 지금 그는 교회를 위해 힘을 다한다. “겁나는 게 없어요.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아니까.” 고백 속에 담긴 그의 삶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해준다.

"광야의 시간 끝에서, 다시 교회를 붙들다"

“나는 20년은 교회 안에서 자랐고, 40년은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남정우 장로는 자신의 인생을 두 구간으로 나누어 회고했다. 유년 시절부터 어머니 손을 붙잡고 다닌 교회, 그 익숙하고 따뜻했던 신앙의 품은 언제부턴가 그의 삶에서 멀어졌다. 서울로 상경한 뒤, 청년 시절과 군 복무, 그리고 결혼과 사업으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그는 교회보다 바쁜 일상이 우선이 되었고, 그렇게 신앙은 ‘거리감’이 되어버렸다. “교회보다 등산 모임이 먼저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지만, 순종하지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60을 앞둔 장로는 평소처럼 새벽 예배를 드린 후 출근길에 나섰다가 뜻밖의 교통사고를 겪는다. 차량은 전복되었지만, 그는 ‘기스 하나 없이’ 걸어 나왔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경고하셨구나.’ 죽을 수도 있었지만 살려주셨구나.” 그 사고는 그에게 다시 신앙으로 돌아올 계기가 되었고, 그는 그날 이후 새벽 예배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먼저 주일을 지키고, 새벽을 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최숙자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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