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곡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금곡에서 살고 있어요. 어릴 땐 이 시골이 너무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젊은 날엔 도시로 나갔고, 사업도 하고, 인생의 바다를 참 많이 헤맸지요. 그런데 돌고 돌아 다시 금곡으로 돌아왔을 땐, 이 땅이 얼마나 귀하고 편안한지 새삼 깨달았어요.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지만 정이 있었어요. 친구들과 산에서 뛰놀고, 들에서 일 도우며 컸어요. 어른들 말씀은 무섭기도 했지만 그만큼 삶을 배울 수 있었죠. 그때 배운 순종과 성실이 제 인생의 밑바탕이 되었어요. 도시에서 오래 살다 보니 마음도 거칠어지고, 세상 욕심도 많아졌어요. 사업이 잘될 땐 세상이 내 것 같았지만, 무너질 땐 참 처참했지요. 그렇게 한계에 부딪힌 어느 날,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어요. "돌아가자. 하나님께로, 고향으로." 그렇게 다시 금곡으로 돌아왔어요. 낡은 집을 고쳐 살고, 밭을 일구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죠. 젊을 땐 몰랐던 은혜를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내 삶의 시작과 끝,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요. 고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불러주신 자리였어요.
나는 1949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어. 솔직히 말하면, 어린 시절은 참 힘들었어. 6.25 전쟁 직후라 먹을 것도 부족했고, 배고픈 게 일상이었지. 그나마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밀가루 배급이 나오면서 좀 나아졌어.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셋이 살았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20살 때부터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그냥 앞만 보고 살았지.
김목사의 고향은 경상남도 창원이며 사모의 고향은 울산이다. 장신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청하유계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1998년부터 곡강교회 당회장으로 있다. 1992년에결혼하여 2녀가 있다. 딸 김한슬(24) 대학생이다. 딸 김다슬(22) 대학생이다.
업로드중입니다.나는 1940년 울진 바닷가에서 태어났어요. 바다가 지척에 보이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지요. 우리는 네 남매였고, 나는 셋째 딸이었어요. 막내는 아니었지만, 언니와 함께 살림을 돕고 동생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농사일과 집안일이 겹치면 아이들도 일손이 되어야 했지요. 그 시절은 다들 가난했어요. 고무신 한 켤레 아껴 신으려고 장독대 옆에 벗어두고 맨발로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우리에겐 익숙한 삶이었어요. 그렇다고 항상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자매들과 강냉이 볶아 먹고, 바닷가에서 조개 줍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정겹고 따뜻해요. 학교는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몇 년만 다니다가 일을 거들어야 했지요. 그래도 그때 배운 글 덕분에 지금도 성경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몸에 밴 성실함과 책임감이 지금까지도 저를 지켜주는 힘이 되었어요. 유년 시절, 고된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이어지는 길이 그렇게 천천히 열렸던 것 같아요.
나는 1936년 낙평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부모는 자식이 많았지요. 나 포함해서 열 명이나 되었는데,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에요. 그땐 약도 없고 병원도 멀어서 아이들이 태어나도 오래 못 사는 경우가 많았어요. 나도 어릴 적에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니까요. 그 시절은 참 가난했어요. 먹을 것도 부족했고, 입을 옷도 늘 모자랐지요. 흙바닥에서 맨발로 뛰놀았고, 하루 두 끼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끼리는 서로 도우며 살았고, 그 안에서 웃음도 있었어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부모님은 부지런하고 성실했어요. 덕분에 나도 일찍 철이 들었지요. 나는 어릴 때부터 일하는 걸 배웠어요. 들에 나가 김을 매고, 물 길러 다니고, 겨울엔 장작 패고…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 하는 일을 따라 했어요. 그게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지만, 그때 배운 성실함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형제들은 다 먼저 떠났지만, 나는 지금도 그 아이들 얼굴이 기억나요. 같이 뛰놀던 동생들, 병석에 누워 있던 누이… 가끔 그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뭉클해요. 살아남았다는 게 감사하면서도, 그만큼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하루하루 성실히 살려고 해요. 살아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