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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늘 한결 같음에 감사

내 인생은 여수에서 시작됐지. 여수에서 태어나 팔남매 중 큰딸로 자랐어.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게 평생 한으로 남았단다. 동생들을 돌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살에 시집가서 남편과 함께 농사 지으며 다섯 명의 자식을 낳고 키웠어. 남편은 참 잘생기고 인상이 착한 사람이었지. 결혼 초기에는 힘든 시절도 많았지만, 서로 의지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어.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사랑과 헌신으로 이겨냈지. 자식들 잘 키우며 살아온 세월이 참 고맙고 소중해.

신앙과 헌신으로 빛난 삶

내 삶에는 참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단다. 건강 문제로 힘들었던 때도 있었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어. 신앙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교회에서 장로로 봉사하면서도 그 신앙이 나를 지탱해주었단다. 신앙이 없었다면, 이런 고난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 때론 너무나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결국 이겨낼 수 있었어. 그래서 나는 신앙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단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힘으로, 나는 오늘날까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거야.

허남순권사

6.25 전쟁 직후, 삶은 가난했고 마음은 허기졌습니다. 영덕 시골 마을, 일본군 잔재로 남은 가옥에 미국 선교사 부부가 들어왔고, 아이들에게 찬송과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찬양을 듣고 처음 교회에 간 날, 제 마음 한가운데 따뜻한 불이 붙었습니다. 비포장 진흙길을 맨발로 걷고, 성경은 한 권도 없었지만, 말씀은 입으로 전해지고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사랑이 어떤 건지 몰랐지만 마음이 울었습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친구들과 함께 예배당에서 울다 웃던 그 날들이, 제 인생의 믿음의 씨앗이 심긴 날들이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찬양

제가 포항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우리 집 옆에 교회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됐지요. 동네 아이들을 모아 교회로 데려가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는 교회가 저에게 큰 기쁨이었답니다. 아이들과 함께 성경 이야기를 듣고,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참 즐거웠어요. 아, 그 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지요. 어린 시절부터 신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하나님께서 제 삶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시는지 깨닫게 되었답니다.

승리하는 삶

내가 태어난 건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지. 어머니는 내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고,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어. 어린 나이에 짐을 지고 일하면서 힘겹게 살았지. 그 시절엔 부역이라는 것이 있어, 한 달에 열다섯 번씩 부역을 나가야 했고,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짐을 지고 면사무소까지 걸어 다녔어. 학교에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남의 이름을 빌려 학교에 들어갔지. 해방 이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됐지만, 나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어. 어릴 때부터 시작된 고된 일들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되었고, 이를 통해 나는 삶의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었어.

“승리의 이름으로 살아낸 신앙의 길”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시골 교회 행암교회의 권사로 살아가는 최승리 권사님은, 이름처럼 ‘승리’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신앙인입니다. 도시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가족과 교회, 지역을 섬기기 위해 다시 시골로 돌아온 그녀의 선택은 단순한 귀촌이 아니라 신앙의 결단이었습니다. 권사님의 삶은 고난으로 단련된 믿음, 가족을 향한 기도, 선교적 비전을 품은 일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기록은 인생화원 팀이 그녀의 삶을 직접 듣고 정리한 신앙의 여정으로, 단지 한 권사님의 이야기를 넘어서 시골 교회가 품고 있는 신앙의 뿌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잊혀지는 것 같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믿음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