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로드중입니다.나는 영덕군 지품면 오천2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없네. 태어난 집도 여기,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여기지. 어릴 적엔 오천1리 쪽에 큰집이 있어서 형제들하고 같이 살다가, 내가 살림을 차리면서 이쪽으로 내려왔지. 그래서 내 삶의 시작도, 끝도 오천이 될 것 같아. 형제는 일곱 남매였는데, 난 그중 셋째였어. 그 시절엔 형제 많은 집이 흔했지. 형님은 참 똑똑했어, 그 시절에 대학교까지 다녔으니까. 근데 나는... 6학년 2학기 때 학업을 멈췄지. 6.25 전쟁이 터지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우리를 이끄셨거든. 학교 대신 똥지게를 지고, 소 오줌이고 사람 똥이고 모아서 보리밭에 뿌리고, 그게 우리 밥줄이었으니. 할아버지는 참 신실한 분이었지. 산에 올라가 밤마다 하나님께 빈다고 기도하시던 분. 시장에 가셔도 꼭 과일 하나 사 오셔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 믿음이 내게도 전해졌어.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 안에 뭔가 든든한 게 있었어. 할아버지 덕에 땅도 조금 사고, 삶의 방향도 조금씩 나아갔지. 나는 학교도 못 마쳤고, 배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이 오천 땅에서 내게 맡기신 게 있었다고 생각해. 농사짓고, 교회 섬기고, 자식들 키우고, 그것으로 내 인생을 채웠지. 지금 돌이켜보면, 참 평범하고도 고마운 삶이었다네. 뭘 더 바라겠나, 나고 자란 마을에서, 믿음 지키며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윤순덕 권사님은 어릴 때부터 청송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출석을 잘하면 도화지나 연필을 상으로 주어 친구들과 함께 교회를 다녔습니다. 철이 들면서 집에서 교회를 못 가게 말리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이 항상 너를 본다'는 가르침 때문에 나쁜 짓을 해본 적이 없다고 회고합니다
정종섭 장로님은 1947년에 출생하셨으며, 그가 두살이던 1949년경 어린 시절 심한 경기를 앓았습니다. 위로 두 분의 누님이 있었고 장로님은 아들로는 맏이였는데, 경기가 심하여 부모님이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병원에 자주 다녔음에도 잘 낫지 않자, 모친은 목욕재계 후 몸을 단장하고 진보에 있는 한 절을 찾아갔습니다. 밤새도록 절하며 공을 들이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부처의 목이 부러지며 그 안에서 예상과 달리 ‘상건불’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실망스러운 경험은 모친으로 하여금 절에 대한 기대를 접고 교회를 찾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석포 가구교회의 박대규 신학생이 흥구 동리에서 겨울 방학 중 노방 전도와 전도 집회를 열고 있었고, 모친은 이 집회에 참석하여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의 경기로 인해 어머니가 여러 곳을 전전하다 교회를 통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장로님 자신은 경기가 언제 멈췄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서너 살 무렵부터는 경기가 덜해지고 건강을 찾았을 것이라고 회상했습니다.
길가에서 밟히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질갱이 꽃처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며 다시 일어서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강하게 살아온 영덕읍교회 김연홍 권사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곡강마을은 대한민국의 동해안 포항시 흥해읍에 있다. 포항시는 경상북도의 동남쪽에있으며, 영일만을 둘러싼 남북의 해안과 평지와 산맥을 포함하고 있다. 흥해읍은 포항 시가지의 북쪽에 있으며,현재의 포항 시가지가 형성되기 전에 이 지역의 중심도시였다. 지금도 청동기시대 이래의 많은 유적들과 옛 흥해군의 문화적 자취들을 가지고 있다. 곡강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곡강 1, 2, 3리로 구분되어있다. 자연마을로는 봉림과 새각단이 곡강1리이고, 동곡을 포함한 너구와 홍곡이 곡강2리이고, 봉림불과 곡강마을이 곡강3리이다. 곡강마을은 곡강2리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북위 36도 06분 32초, 동경 129도 24분 24초에 있다. 지도상 위치는 경상북도 포항시의 북쪽에 있는 흥해읍의 일부이다. 1995년에 한동대학교가 곡강리의 맞은편에 개교하고, 2000년대에 영일만신항과 배후산업단지가 잇달아 개발되면서 곡강리는 교통상으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흥해읍에서 흥해 안들을 동쪽으로 가로질러 남송리 서원마을을 지나고 짓때이 고개를넘어서서 칠포까지 늘어선 마을들이 곡강리이다. 이 마을이 곡강리라고 불린 것은 곡강이 지나가는 마을이기 때문이며, 곡강은 비학산과 도음산에서 흘러온 물이 동해로 나가는 강의 이름이다. 동해에 도착하기 직전에 낚시봉 언덕에서 직각으로 꺾여 흐르기 때문에 강 이름이 곡강이 되었다.
마을회관 맞은편에 사는 노인회장님 부부이다. 파평윤씨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마을에서 살았다는 윤상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이장을 맡아 일했으며 임기가 끝난 뒤에 다시 이장을 맡아 임기를 두 번 맡았다. 부인 황분선씨는 신광면 기일리에서 시집와서 2남 2녀를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