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밟히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질갱이 꽃처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며 다시 일어서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강하게 살아온 영덕읍교회 김연홍 권사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마을회관 맞은편에 사는 노인회장님 부부이다. 파평윤씨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마을에서 살았다는 윤상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이장을 맡아 일했으며 임기가 끝난 뒤에 다시 이장을 맡아 임기를 두 번 맡았다. 부인 황분선씨는 신광면 기일리에서 시집와서 2남 2녀를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업로드중입니다.나는 영덕군 지품면 오천2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없네. 태어난 집도 여기,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여기지. 어릴 적엔 오천1리 쪽에 큰집이 있어서 형제들하고 같이 살다가, 내가 살림을 차리면서 이쪽으로 내려왔지. 그래서 내 삶의 시작도, 끝도 오천이 될 것 같아. 형제는 일곱 남매였는데, 난 그중 셋째였어. 그 시절엔 형제 많은 집이 흔했지. 형님은 참 똑똑했어, 그 시절에 대학교까지 다녔으니까. 근데 나는... 6학년 2학기 때 학업을 멈췄지. 6.25 전쟁이 터지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우리를 이끄셨거든. 학교 대신 똥지게를 지고, 소 오줌이고 사람 똥이고 모아서 보리밭에 뿌리고, 그게 우리 밥줄이었으니. 할아버지는 참 신실한 분이었지. 산에 올라가 밤마다 하나님께 빈다고 기도하시던 분. 시장에 가셔도 꼭 과일 하나 사 오셔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 믿음이 내게도 전해졌어.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 안에 뭔가 든든한 게 있었어. 할아버지 덕에 땅도 조금 사고, 삶의 방향도 조금씩 나아갔지. 나는 학교도 못 마쳤고, 배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이 오천 땅에서 내게 맡기신 게 있었다고 생각해. 농사짓고, 교회 섬기고, 자식들 키우고, 그것으로 내 인생을 채웠지. 지금 돌이켜보면, 참 평범하고도 고마운 삶이었다네. 뭘 더 바라겠나, 나고 자란 마을에서, 믿음 지키며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가을을 풍성하게 채우는 국화꽃처럼, 영덕읍교회 김옥금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장미가 예쁘게 가시가 있어서 더 좋은 영덕읍교회 김영숙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친정은 대보 가는 길 대동배 발산 예스리라는 마을이다. 26세에 봉림불의 청년에게시집와서 2남1녀를 낳았다. 남편은 4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혼자 자녀를길러 결혼시켰다. 자녀들은 울산과 포항에 살고 있으며 손자녀들을 낳아 할머니를찾아온다. 시금치 농사를 하면서 농삿일을 덜 하지만 시금치 만지는 일을 하다가 허리가 굽었다고한다. 봉림마을 노인들은 다리가 일자로 곧은데 너구마을과 봉림불 노인들은 다리가 다 구부정하게 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