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은 대보 가는 길 대동배 발산 예스리라는 마을이다. 26세에 봉림불의 청년에게시집와서 2남1녀를 낳았다. 남편은 4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혼자 자녀를길러 결혼시켰다. 자녀들은 울산과 포항에 살고 있으며 손자녀들을 낳아 할머니를찾아온다. 시금치 농사를 하면서 농삿일을 덜 하지만 시금치 만지는 일을 하다가 허리가 굽었다고한다. 봉림마을 노인들은 다리가 일자로 곧은데 너구마을과 봉림불 노인들은 다리가 다 구부정하게 휘었다고 한다.
태명 - 사랑이 22년 11월10일 3.55kg 순천 미즈병원에서 태어나다.
최말림 권사님은 마흔 살 무렵, 남편의 병고를 계기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어린 시절 홍역을 앓은 후유증으로 숨이 차고 피를 토하는 등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교회가 많았음에도 이전까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권사님은, 김 권사님과 김태수 장로님의 끈질긴 권유를 받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낫는다,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권사님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권사님을 부르시어 교회를 찾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남편은 약 1년간 갈멜산 기도원에서 지내며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고, 그 후 4~5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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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동에서 태어나 100여 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온 장두이 권사님은 이 동네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어릴 적부터 성법교회를 다녔던 권사님은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기를 직접 겪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삶의 터전을 잃고 포항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고향을 떠났다가 해방 이후 19살이 되던 해 다시 성법동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릴 때는 교회를 다녔지만 포항으로 이사 가면서 잠시 멀어졌던 신앙의 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어졌습니다. 옛 교회에서는 남자 성도들과 여자 성도들이 각각 다른 공간에 앉았던 기억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