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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평생 한 마을, 한 교회 – 믿음 지킨 삶의 자리"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가정을 이루고, 평생을 머물며 하나님을 알아간 사람. 김광회 집사님의 인생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은 뿌리로 이어져 있다. 그는 1948년 행암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 마을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농촌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신앙도, 교회도, 가정도 스스로의 손으로 일궈나가야 했던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충실히 살아냈다. “고생이라기보다 보람이죠”라며 담담히 말하는 집사님의 고백 속에는 그 어떤 휘황찬란한 간증보다 무게 있는 ‘삶의 신앙’이 배어 있다. ‘인생화원’ 팀은 행암교회 신앙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이 땅의 어른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 김광회 집사님은 마을의 역사이자 교회의 역사이며, 이제 그 기억을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신앙의 유산으로 남기려 한다.

곡강마을역사2

1957년부터 마을 위에 천마지를 축조하기 시작해서 몇 년에 걸려서 못을 막았고, 들판가운데를 흐르는 하천을 정비했다. 이 과정에서 봉림호의 끝 봉림불 앞에 해수갑문을설치하여 역류방지시설을 만들고 간석지 바닥을 준설하여 제방을 만들었고, 천마지가완공되자 저습지의 많은 부분이 농지로 바뀌었다. 이어서 1970년대 중반에는 정영규 동장과원연호 동장 및 이등질 새마을지도자를 중심으로 경지정리 사업이 시행되었다. 확장된농지는 지대가 낮고 물 사정이 좋았기 때문에 주로 벼농사를 지었다. 이로써 저습지 전체가농지로 전환되고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곡강의 미곡생산이 급증하였고 마을의 생활환경이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이 사업은 시행 기간 동안 동민의 취로를 적극 지원하였기 때문에, 농가수입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당시의 취로대장을 참고하면, 대부분의 동민은 이 사업에 노역으로 참여하고 보수를 받았으며 그것이 당시 생활개선의 기초자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그러나 흔적은 남는다

나는 1949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어. 솔직히 말하면, 어린 시절은 참 힘들었어. 6.25 전쟁 직후라 먹을 것도 부족했고, 배고픈 게 일상이었지. 그나마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밀가루 배급이 나오면서 좀 나아졌어.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셋이 살았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20살 때부터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그냥 앞만 보고 살았지.

믿음의 씨앗이 맺은 은혜의 열매

어릴 적, 들판에서 패랭이꽃을 꺾어 놀던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의 순수한 마음과 자연의 따스함이 여전히 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생애에 크고 놀라운 은혜로 함께하셨음을 믿으며, 영덕읍교회 심경순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새 생명,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피어나다

백합처럼 아름답고 향기가 좋은 영덕읍교회 박연락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황분선 윤상수 부부

마을회관 맞은편에 사는 노인회장님 부부이다. 파평윤씨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마을에서 살았다는 윤상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이장을 맡아 일했으며 임기가 끝난 뒤에 다시 이장을 맡아 임기를 두 번 맡았다. 부인 황분선씨는 신광면 기일리에서 시집와서 2남 2녀를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