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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삶과 50년 믿음의 여정: 가구 교회의 산증인

최말림 권사님은 마흔 살 무렵, 남편의 병고를 계기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어린 시절 홍역을 앓은 후유증으로 숨이 차고 피를 토하는 등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교회가 많았음에도 이전까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권사님은, 김 권사님과 김태수 장로님의 끈질긴 권유를 받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낫는다,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권사님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권사님을 부르시어 교회를 찾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남편은 약 1년간 갈멜산 기도원에서 지내며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고, 그 후 4~5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경 속 피어난 믿음의 꽃

장성진 권사는 영양 일월에서 7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의 뜻에 따라 흥구리로 시집을 오게 되었으나, 결혼 후 그녀의 삶은 곤궁의 연속이었습니다. 밥 짓기, 물 긷기, 손이 얼어붙도록 찬물에 빨래하기 등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당시 흥구리는 100가구가 넘는 대촌으로, 한 집에 6~7명, 많게는 10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담배, 고추, 벼, 보리, 콩 등 모든 종류의 농사를 인력으로 직접 지으며 자녀 다섯 명(2남 3녀)을 키워야 했기에, 젊은 시절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궁핍과 고된 노동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장을 보기 위해 아기를 업고 보따리를 이고 4km 떨어진 진보까지 걸어 다녀야 할 만큼 고단한 삶을 살았으며, 그녀의 고생 담은 책 10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콩별이 성장앨범

태명 - 사랑이 22년 11월10일 3.55kg 순천 미즈병원에서 태어나다.

장금식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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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호님

마을에서 가장 안쪽에 사는 부부이다. 평생 농사를 지었으며 1남1녀를 두었다. 자녀들은 다 결혼하여 도시로 나가고 내외만 살고 있다.

성권자 집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