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법동에서 태어나 100여 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온 장두이 권사님은 이 동네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어릴 적부터 성법교회를 다녔던 권사님은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기를 직접 겪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삶의 터전을 잃고 포항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고향을 떠났다가 해방 이후 19살이 되던 해 다시 성법동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릴 때는 교회를 다녔지만 포항으로 이사 가면서 잠시 멀어졌던 신앙의 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어졌습니다. 옛 교회에서는 남자 성도들과 여자 성도들이 각각 다른 공간에 앉았던 기억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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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리 한복판에서 오순태 장로님은 다섯 대째 그 땅을 지켜오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 아들, 손주”로 이어지는 삶의 터전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선 믿음과 공동체의 상징이다. 마을 어른들의 기억 속에서 장로님 가문은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농사를 주 업으로 살아온 그의 집안은 농경문화의 흐름과 함께 이 지역을 지켜왔다. 예전에는 마을이 훨씬 컸고, 말(馬)을 기르던 지역이었으며, 자연의 위엄이 깃든 삶이 일상이었다. 이제는 한적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이 땅을 떠날 생각이 없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신앙을 지켰고, 후손들 또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로님에게 서촌은 단순한 주소가 아닌 인생의 뿌리이며, 믿음의 땅이다.
최말림 권사님은 마흔 살 무렵, 남편의 병고를 계기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어린 시절 홍역을 앓은 후유증으로 숨이 차고 피를 토하는 등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교회가 많았음에도 이전까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권사님은, 김 권사님과 김태수 장로님의 끈질긴 권유를 받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낫는다,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권사님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권사님을 부르시어 교회를 찾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남편은 약 1년간 갈멜산 기도원에서 지내며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고, 그 후 4~5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